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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24 14:28
중국 대륙 횡단기(둥베이에서 시베이까지)[3]
 글쓴이 : 오한수
조회 : 3,778  
1월 2일 목요일 제11일차
영하 17도. 그동안 추위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워낙 건조한 곳이라서 그런지 별로 춥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길 건너 차이나 뱅크 남여 직원들이 근무복 차림으로 인도에 정렬하여 음악에 맞춰 아침운동을 하고 있다.
호텔 사장과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택시 대절료를 100원 더 주기로 하고, 신장 시간으로 09:00에 아이딩후(艾丁湖, 애정호)로 향했다. 투루판에서 남쪽으로 54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시내를 벗어나 황무지 가운데로 뚫린 비포장의 직선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길가에는 염분을 이용하여 화학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는데,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은 듯, 거의 폐허가 되어가는 숙소 앞에 모여 있는 근로자들을 보니 시베리아 벌판의 강제수용소가 연상되었다.
드디어 아이딩후에 도착. 해발 -154M. 지상에서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처음 서 보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라고 운전기사는 자랑스럽게 설명을 덧붙인다. 실크로드로 무역을 하던 시절에는 이곳의 소금을 중앙아시아로 수출했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물이 고여 있지만 겨울철이라 모두 말라버리고 하얀 소금덩어리가 물결 모양을 이루며 굳어 있었다. 얼마나 넓은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구덩이를 파둔 곳에는 하얀 소금이 굳어 있고, 염분이 섞인 흙덩이는 돌처럼 단단하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은 것 중의 하나다.
숭진커우첸푸동(勝金口千佛洞, 승금구천불동)은 당나라 때 만들어진 석굴인데 내용물은 모두 훼손되고 석굴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길 건너편에서 사진 촬영만하도 돌아섰다.
식당이 모여 있는 길거리에서는 양을 잡아 고기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팔고 있었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의 석탄 화덕은, 필요한 부분만 닦아서인지 솥 주변은 석탄 찌꺼기가 소복이 쌓여 있다. 싱크대는 생각도 할 형편이 아니고, 시멘트 바닥에 음식 그릇을 둔 채로 설거지를 한다. 위생적인 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듯하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정성들여 만들어 주는 국수 맛은 정말 좋았다.
투루판을 대표하는 푸타오고우(葡萄溝, 포도구). 계곡의 시냇물을 따라 폭 500m 정도, 길이 7km 정도의 포도만 재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약 200여종의 포도가 재배되고 있는데, 맛이 좋고 달기로 유명하단다. 겨울철이라 포도 넝쿨은 모두 흙 속에 묻혀버리고, 산 위에 빽빽하게 지어진 건조창만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감아정(坎兒井). 강수량은 적고 증발량은 많기 때문에 톈산에서부터 지하 수맥(평균 지하 100m 정도)을 찾아 경작지나 마을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우물을 파고는, 다시 각각의 우물 깊이가 일정하도록 가로로 수로(水路)가 되도록 터널을 뚫어놓은 것이다. 터널은 반드시 정삼각형으로 뚫었으니, 과학적인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물은 지금도 식수나 농업용수로 사용되는데 투루판 전역의 지하수로를 모두 합하면 약 5,000km정도 된다고 한다.
투루판의 서쪽에 넓게 펼쳐진 갸오허구청(交河故城, 교하고성)은 전한시대부터 성곽도시로 발전 했었고, 원나라가 이곳을 폐허화하기 전인 당나라 때에는 안서도호부(安石護府)를 두기도 했던 곳이다. 강물이 흐르면서 황토층을 깎아낸 것을 인공으로 더 깎아내어 만들어진 성인데, 성벽의 황토에 층이 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길쭉한 타원형 모양의 이 성에는 중앙대로와 치안 유지를 위한 망루, 대불전, 관청, 감옥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찬란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저녁에 호텔 택시 기사의 안내로 위구르 민속춤을 공연하는 식당에 갔으나, 겨울철이라 손님이 적어 무희들의 공연은 없고,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가수의 노래에 맞춰 무대로 나와 춤을 추곤 했다. 남자 손님은 4명뿐인데 여자 손님은 30여명 정도 되었다. 투박한 외투를 벗은 여자들의 옷차림은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상의와 다리에 꼭 끼는 바지를 많이 입고 있었다. 왈츠나 서구의 춤보다는 그들의 민속춤을 더 즐기는 것 같았는데, 디스코 음악이 연주되니 괴성을 지르며 열광한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투루판의 상류계층이란다.

1월 3일 금요일 제12차
10:50 투루판을 출발 다허옌으로 향했다. 국도는 눈이 얼어붙어 빙판이고, 운전기사는 유리창의 성에를 긁어내랴 운전을 하랴 마냥 바쁘다.
열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역 앞의 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형적인 중국의 재래시장이었다. 엉성한 목조건물 속은 어둑컴컴한데 추위를 녹이기 위해 피워놓은 석탄난로의 매캐한 냄새와 연기로 목과 눈이 따갑다. 시장 좌판 위의 상품 사이사이에 석탄난로가 얹혀 있다.  역 앞의 고급호텔 광장에는 리어카 음식 장수들이 가장 값싼 음식을 팔고 있어 대조적이다. 남루한 옷을 입고 커다란 보퉁이를 둘러맨 사람들(보통 여러 가족으로 구성된다고 함)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방으로 가고 있었다. 한번 가면 몇 년이 지나야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그런 형편이므로, 중국인들은 외국에 돈 벌러 나가서 가족과 떨어져 몇 년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열차역마다 공안원과 역무원이 보안 검색대를 설치하고 승객들의 화물을 철저하게 검색한다. 각 역마다 수하물 보관소가 있어서 편리하다. 영수증을 떼어주고 보관하는 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책임을 진다. 역 대합실 안에는 입장료 5원의 유료 대합실이 있는데,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며 차를 마실 수 있고 VCD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역 앞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주인 되는 남자의 고향 친구들이 일자리를 찾아가는 도중에 들렀는데도, 따뜻한 물 한잔 대접하지 않는다. 주인도 그러는 것이 당연한 듯하고, 친구들도 그런 대접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신장의 서쪽 끝에 있는 국경도시인 카스(喀什, 위구르 발음으로는 카슈가르)로 가기 위해 17:40에 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에서 오는 열차를 탔다. 2층으로 된 열차인데, 각 층은 방으로 나뉘어 지고, 각 방은 상 ․ 하 2개씩 4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스팀이 들어오고 승객은 만원이라 상층 공기는 매우 건조하여 목이 따가울 정도인데, 현지인들은 건조한 기후에 익숙해서 그런지 아무런 불편이 없는 듯하다.
멀리 보이던 눈 덮인 톈산산맥 가까이 이르자,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강물과 퇴적되어 밀려오는 바위 부스러기가 철로까지 이르지 못하도록 둑을 쌓아놓은 것이 보인다. 이 철로는 최근에 개통된 것으로서, 험난한 산맥에 철로만 건설해도 힘이 들 텐데, 철로를 유지 ․ 보호하기 위한 부대시설까지 함께 건설하느라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 톈산산맥을 넘어갈 때는 몇 번이나 굽이굽이를 돌아 힙 겹게 오른다. 스피커에서는 중국어와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오고, 여자 승무원 둘이서 번갈아 가며 순회하고 청소한다. 세면장과 화장실이 객차의 앞뒤에 있는, 관광객을 위한 중국의 최신형 열차라고 한다.

1월 4일 토요일 제13일차
북쪽으로는 톈산산맥을 의지하고 남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타림분지를 벗 삼아 종착점도 모르는 듯 열차는 하염없이 달린다. 톈산의 눈이 녹아 시내가 흐르는 곳에는, 반드시 나무가 있고 농경지도 있으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겨우 연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슨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는지......
카스로 향하는 도중에 볼 수 있는 톈산의 색상은 아주 다양하다. 산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바위는 붉은색 ․ 연두색 ․ 검은색 ․ 흰색 등 아주 다양하다. 옛날에는 염료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위구르어로 ‘여러가지 색깔의 집’이라는 의미인 카스는, 실크로드인 톈산남로와 서역남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중국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다. 예정 시간보다 10분 연착되어 14:35에 도착했다. 아주 양호한 편이란다. 출찰구 주변에는 공안원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승객들을 훑어본다. 국경 지대이기 때문에 경비가 삼엄하다. 역 건물에 있는 병관에 투숙하려 했으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시내로 들어와 구소련 영사관을 개축하여 만든 색만빈관에 짐을 풀었다.
애절한 사연이 전하는 샹페이무(香妃墓, 향비묘)를 찾았다. 향비의 묘라기보다는 이 지방의 권력자였던 아파 호자(和卓) 가족들의 묘이다. 오른쪽 구석에 노란 비단으로 장식한 향비의 묘가 안치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설(異說)이 전하지만, 타의에 의해 건륭황제의 후궁이 되었다가 처절하게 생을 마감한 향비의 유체를 이곳 사람들이 3년에 걸쳐 운구해 왔다고 한다.
카스에서 동쪽으로 40여 km를 달려서야 황량한 벌판에 우뚝 서 있는, 중국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불교 사원의 유적지인 모루푸타(莫爾佛塔, 막이불탑)를 볼 수 있었다. 높이 15m 정도 되는 두 개의 커다란 황토로 만든 탑만 있고 다른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나친 마을도 투루판처럼 포도 재배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투루판의 청년로처럼 길 양쪽에 포도를 심어 그 넝쿨을 길 위로 올릴 수 있도록 지주를 설치해 놓았는데 그 길이가 몇 백m는 됨직하다. 거의 대부분의 농가에도 집 앞 마당에 포도를 심고 그 넝쿨을 지붕에 올릴 수 있도록 지주를 설치해 두었다. 소득이 높은지 집의 규모도 크고, 차림새도 비교적 깨끗하다. 모두 흙벽돌을 사용하여 집을 지었고(TV에 나오는 아프카니스탄의 집을 생각하면 됨), 포도밭 둘레에도 담을 쌓은 곳이 있으며, 가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집이나 밭의 담 위에 견고한 나뭇가지를 꽂아놓은 것이 보이기도 한다. 농한기라 할 일이 없어서인지 길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인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끼리끼리 모여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애티가르칭전스(艾提朶爾淸眞寺) 앞 광장은 카스 주민들의 생활상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광장 우측에는 온갖 식당들이 즐비하고, 좌측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양고기 굽는 냄새가 내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잘게 다져서 양념한 것으로 한 꼬치에 1원. 중국에 와서 먹은 것 중 맛이 제일이다.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니 청동으로 만든 수공예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기에는 질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투루판에서 보지 못한 민속춤을 보기 위해 호텔 프론트의 아가씨에게 물어서 갔는데, 그곳 역시 투루판 식당과 마찬가지였다. 손님들 중에 10대 소녀들이 20여명 정도 있고, 남자들이 술과 담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가 날 뿐이다. 카스는 국경 도시이기 때문에 위구르족 이외에 인접 국가에서 들어와 정착한 종족도 많아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몇 가지 춤이 끝난 다음에 디스코 타임이라며 실내등 대신 싸이키 조명이 비치고, 전동 스크린에 뮤직비디오로 우리나라 가수인 이정현의 ‘바꾸바꿔’가 한글 자막과 함께 나타나자 실내는 온갖 괴성으로 가득했다. 이역만리 황량한 카스에서 우리나라 가수의 노래를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석탄이 탈 때 나는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카스의 밤거리를 온통 뒤덮고 있다. 택시를 비롯한 모든 차량들은 무엇이 그렇게도 바쁜 지,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는데도 경적을 울리며 돌진한다. 난폭운전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국경지대이고 여러 민족이 모여 살기 때문에 인심이 상당히 거칠다고 한다.

1월 5일 일요일 제14일차
8시(북경 시간)에 일어나 9시에 호텔을 나서니 아직도 어둡다. 일요 바자르가 열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길을 몰라 시내를 돌아서 가니 요금이 두 배로 나왔다. 오히려 큰소리를 지르며 다 받아가고야 만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부지런한 상인들 몇 만 나오고 한산하다. 어렸을 때 시골 장터 주막거리에서 사먹던 국밥을 생각하며, 식당에 들어가 만두국을 주문했다. 식당 종업원들은 오늘 하루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만두를 빚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떼어내는데 크기가 기계로 자른 듯 한결같다. 얇게 빚은 만두에 양고기를 잘게 썰어 넣고 얼큰한 양념으로 맛을 내었는데, 우리 음식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몽고와 신장은 음식에 특별한 향을 넣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도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상품들을 구경하는데 택시, 자전거 수레, 마차 등을 피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사람이 있건 없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어떻든 받치면 자기만 손해를 보게 된다.
시장 관리 건물의 옥상에 국제무역시장이라고 쓰여 있다. 다른 나라와도 교역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3시간 동안 돌아다녔는데도 다 보지 못했다. 도매 거래가 주종을 이루는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필품은 없는 것이 없다. 수공예품을 비롯한 많은 상품들이 있지만 기념품으로 살만한 고급스러운 것은 별로 보이지 않고, 그들의 실생활 수준에 맞게 제작된 것 같다.
중국의 은행은 일요일에도 업무를 본다. 1년 동안 노는 날은 한번도 없다고 한다. 암달러상으로 보이는 사람이 은행 안에서 경비 경찰과 이야기하며 놀다가, 우리더러 환율을 은행보다 더 계산해 줄 터이니 자기하고 달러를 바꾸자고 한다. 암달러상이 은행 안에서 고객을 찾고 있는 희한한 곳이다.
카스에서 최고급 호텔인 ‘온주대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허름한 식당에서 만두나 국수로 끼니를 때우다가 고급 식당에 들어오니 기분이 이상하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골라서 배불리 먹고 나니 3인분에 114원 들었다. 화장실도 우리나라 특급 호텔 수준이다.
역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공안원과 역무원 아주머니가 오더니 큰 소리를 지르며 모두 대합실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한 줄로 서서 모든 짐을 보안 검색대를 통과시키고, 개찰까지 미리 하면서 대합실 맨 안쪽 자리부터 차례차례 앉으라고 한다. 초등학생 다루는 수준이라고 웃었는데, 나중에 열차를 탈 때는 철책을 치우더니 맨 안쪽에 앉은 사람부터 차례로 플렛폼에 나가게 한다. 물론 역무원 한 사람이 지키고 서서 새치기를 막고 있었다. 아직도 질서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그들이기에 이렇게 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2층 열차의 상층 침대는 높이가 너무 낮아 앉을 수가 없다. 올라갈 때부터 손잡이를 잡고 몸을 눕혀야 하고, 옷을 벗거나 이불을 정리하는 것도 누워서 해야 한다. 열차 안에서는 모든 물가가 거의 시중의 2배 정도 된다. 중국인들이 장거리 열차 여행을 하면서 먹을 것을 많이 준비해 오는 것도 이제 이해가 된다.
2주일간의 강행군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어 가는데, 캄캄한 벌판 한가운데서 열차가 멈추더니 꼼짝을 않는다. 열차 안의 공기는 건조하고 이야기 소리는 시끄러워 짜증만 난다. 참고로, 중국인 두 명이 이야기에 열중하면 어찌나 소리가 크고 빠른지 꼭 우리나라 사람들 말싸움하는 것 같다. 30분 정도 정차해 있더니 이번에는 뒤로 되돌아간다. 열차를 타본 경력이 내 나름대로 몇 십 년은 되는데 뒤로 가는 기차는 이번에 처음 보았다. 2시간 정도 늦어지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 사유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승객 중에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참 편리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1월 6일 월요일 제15일차
우여곡절 끝에 04:30에 쿠차(庫車, 고거)에 도착. 한참을 헤맨 끝에 아담한 여관을 찾아서 특실(호텔보다 못하지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08:00에 일어났다. 축 늘어진 몸을 뜨거운 물로 씻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더구나 열차에서 내렸지 않았는가. 이젠 열차만 봐도 겁이 난다.
한나라 때에는 서역도호부가 있었고, 당나라 때에는 안서도호부가 있었던 톈산 남로의 중심 도시다. 그리고 이곳은 당나라 현장법사가 2개월간 머문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니 만큼 불교 유적도 꽤 많이 있다.
시내에서 60km정도 떨어진 크제르카하첸푸퉁(克孜爾朶哈千佛洞, 극자이타합천불동)으로 가기 위해 눈 덮인 황무지를 달렸다. 가는 도중에 소금산(鹽山) 줄기를 넘어가는데 나무 한 포기 없는 벌거숭이 바위산이 높고 험한 산세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관광객이 없어서 그런지 매표소 직원과 안내인이 한참만에야 나타난다. 매표소 입구 광장에는 인도의 고승 구마라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조경사업도 이루어져 있으며, 계곡물을 끌어와 호수도 만들어 놓았다. 안내양은 손이 시린지 빨갛게 변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능숙한 영어로 설명해 준다. 이곳의 석굴은 기원 6, 7세기경의 것이 대부분인데, 보존 상태가 불량하여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영국, 독일, 이태리인들에 의해 도굴되고 파손되었다고 안내인이 귀띔해 준다. 불상은 도난 또는 파손되어 형체도 없고, 벽화는 바위 위에 흙을 덧씌우고 그린 것인데 현존하는 것은 색상이 아직도 선명하다. 둔황에 있는 무가오쿠(莫高窟, 막고굴)처럼 훼손된 석굴 입구를 복원하고 문을 달아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오던 길을 되돌아 중간쯤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한참을 달린 후에 키질리야(克孜利亞) 신비 협곡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의 양쪽 바위산도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협곡 입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흙이 씻겨나간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절벽을 이루고 있는 단층마다 색상이 달라 총천연색이다. 쿠차 시내에서 여기까지는 67km, 협곡을 구경하는 데는 걸어서 왕복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마는 시간이 없어 둘러보지 못하고 돌아서니 너무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는 석탄을 실은 차들이 많이 달린다. 윗덮개도 씌우지 않고 달리다보니 길에는 석탄 덩어리가 많이 떨어지는데, 자전거를 세워두고 석탄 덩어리를 주워 모으는 사람도 보인다. 잠깐만 수고하면 한 달 연료는 해결될 것 같다.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한나라 서역도호부 시절에 세운 봉화대가 있었다. 황토를 다져서 만들었는데 무너지지 않도록 사이사이에 나무기둥을 끼워놓았다. 높이 13.5m의 장방형으로 아직도 평원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다.
택시 기사가 너무 친절하여 집으로 우리를 초대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좋다고 한다. 부모님이 계시다기에 과일과 술을 사가지고 갔다. 기사 아버님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하신 분인데 퇴직 후에도 학교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현재 64세이고 연봉으로 한 달에 1,400원을 받기 때문에 중상계층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사택 내부는 거실1, 노부부와 손자가 함께 쓰는 방1, 아들 부부 방 그리고 부엌이 있었다. 신장의 대부분 농민은 토지가 워낙 척박하기 때문에 겨우 먹고 살 정도라고 한다. 이야기 중에 딸과 사위가 왔는데 부부교사란다. 기사의 어머니는 제발 자기 아들을 한국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아직도 이들은 한국에만 가면 부자가 되는 줄로 알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것이 TV와 비디오, VCD라고 한다. 개방 이후 급격하게 불어 닥친 이런 경향으로 이국의 모습을 본 이들은 막연한 낭만적인 동경을 펼치는 것이 아닐까 추측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