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사
   

 

 
현재위치 : Home > 고객센터 > 방명록
 
작성일 : 08-10-24 14:29
중국 대륙 횡단기(둥베이에서 시베이까지)[5]
 글쓴이 : 오한수
조회 : 3,465  
1월 12일 일요일 제21일차
3,000여 년 전부터 온천 휴양지의 역사를 지닌 화청츠(華淸池, 화청지).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생활했던 곳이고, 화청궁 안의 오간청(五間廳)은 1936년 장개석이 장쉐랑(張學良)에게 체포당한 시안사변이 일어났던 곳으로 유명하다. 정원과 누각은 정밀하고 아기자기하게 전통적인 중국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고, 목욕탕 영업까지 하고 있었다. 온천수의 수질이 매우 좋다고 한다.
열차표를 사기 위해 역으로 가니 창구 앞은 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일요일이기도 하지만 국제적인 관광도시인 산시성(陝西省)의 성도(省都)인 시안역에 표 파는 창구가 두 개 밖에 없는 것이다. 역에서 표 사는 것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와서 표 파는 회사의 상주 직원에게 부탁하니, 한 장에 수수료 45원씩을 달라고 한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물결 따라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표를 부탁하고 시내 성벽 관광을 위해 북문으로 갔다.
북문 관리를 맡은 아주머니가 트롤버스는 서문에 가면 탈 수 있다고 해서 서문으로 가니, 서문 관리인은 남문에 가야 탈 수 있다고 한다. 긴 여행으로 체력이 다 소모되어가는 상태인데 너무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택시 기사들도 트롤버스를 어느 성문에 가야 타는 지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시안은 국제적인 관광도시이고, 더구나 2008년에는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하는데 관광지의 관리인들 교육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22:25발 청뚜행 특쾌 열차에 탑승. 열차는 만원이었다. 내일 14:00 도착 예정.

1월 13일 월요일 제22일차
밤새도록 잠을 자다가 눈을 뜨니 열차는 검각(劍閣)을 지나고 있었는데, 주변의 경관이 북쪽 지방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산에는 나무가 있고 밭과 논에는 한겨울인데도 파랗게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산이 많아서인지 조그마한 평지도 버리지 않고 경작지로 만들어 놓았다. 집 둘레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북쪽의 집들이 바람을 막기 위해 담을 지붕 높이만큼 쌓아놓은데 비해, 이곳은 기후가 따뜻해서 인지 높이가 낮거나 아예 담이 없는 집도 많다. 쓰촨성(四川省, 사천성)은 해를 보고 신기해서 개가 짓는다더니, 열차가 한참을 달려도 안개는 걷힐 줄을 모른다. 앞 침대에 앉아 있는 두 일본 여학생들은 무슨 사연이 그렇게 많은지 잠시도 입을 멈추지 않고 재잘거린다.
평생을 불우하게 살면서도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당나라 최고의 시인인 두보가 3년 동안 머물었던 두푸차오탕(杜甫草堂, 두보초당)을 관람했다. 지금의 중국 사람들은 이백(李白)은 자본주의 성향이 짙다고 중요시 여기지 않으나, 두보(杜甫)는 고된 인생을 통하여 참다운 삶을 노래하였다하여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두보가 살았던 집도 깔끔하게 복원해 놓았고, 동상과 흉상도 있으며. 두보의 일대기를 정리한 기념관, 두보의 생애를 그린 그림을 타일로 구워 벽화로 전시해 놓은 것은 일품이었다. 미로같이 꾸며졌기 때문에 반드시 입장권 뒤에 있는 약도를 보고 화살표를 따라 돌아야지, 그냥 구경하다가는 몇 가지 못보고 나올 수도 있고 잘못하다가는 출구도 제대로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와 제갈공명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사당인 우허우츠(武侯祠, 무후사). 관운장과 장비 등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모형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고, 유비의 묘도 잘 다듬어져 있었다. 도원결의를 찬양하는 누각은 이해관계에 민감한 현대인들에게 신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할 것 같다.
당나라 때의 여류시인인 설도(薛濤)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망강루가 있는 왕장궁위안(望江公園, 망강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어두워서 누각의 대략적인 모습과 설도의 동상만 볼 수 있었을 뿐, 130여 종이나 되는 대나무가 공원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데 그냥 대나무로구나 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사천요리의 하나인 마파두부와 담담면을 먹었는데, 이때까지 먹은 중국 국수 중에 담담면이 제일 맛이 좋았다.

1월 14일 화요일 제23일차
방이 너무 추워서 일찍 잠이 깨었다. 가장 따뜻한 곳에 와서 가장 춥게 잠을 잤다. 커텐 뒤의 창문도 조금 열려있고, 스팀도 꺼져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청두(成都, 성도)역 앞은 열차를 타러오는 사람과 이제 막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야단법석이다. 열차표를 못 구해서인지 역 광장의 시멘트 바닥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일가족도 보인다. 사설매표소에서 표 한 장에 20원씩 받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며 기다린다고 했다. 아침 도매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특히 짐 운반꾼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짐을 실은 차가 오면 뛰고 또 뛴다. 자전거 인력거에도 등록번호가 있고 아주머니 운전기사도 있다.
주자이거우(九塞溝, 구새구)로 가기위해 1박 2일에 1,800원 주기로 하고 택시를 대절했다. 청두에서 더우장옌(都江堰, 도강언)까지의 성권고속도로를 시속 140km로 달린다. 운전기사는 티베트에서 군대 생활할 때 보급트럭을 몰았고, 제대 후에도 티베트에서 택시를 몰았기 때문에 티베트에서의 운전 경력이 8년이라고 하며, 오늘 가는 코스는 약 450여km로서 계속 산길을 감돌아가기 때문에 자기만한 기사는 없을 것이라며 우쭐댄다. 빨리 달리느라 얼마나 차를 거칠게 모는지 뒷좌석에 앉아 있자니 멀미가 날 정도로 온몸이 흔들린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2차선 공로는 민강(岷江) 줄기를 끼고 산비탈을 꼬불꼬불 돌아가며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강 주변에는 골재용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공장들로 온통 난장판이다. 강물은 흙탕물이 돼 버렸고 도로도 울퉁불퉁하다. 풍부한 수량을 이용하기 위해 새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곳도 두 곳이나 보인다.
4시간 정도 산비탈을 감돌아 오르더니 이번에는 작은 능선을 넘는다. 주위의 산에 비해서 작은 것이지 몇 번이나 돌고 돌아 겨우 꼭대기에 올랐다. 잠시 쉴 겸 차를 세우고 내려다보니 오른쪽 계곡은 천인단애의 절벽 아래로 까마득하다. 민강 줄기는 실낱같이 흐르고, 강가의 민가는 조근만 점과 같이 가물거린다. 민산산맥의 끝자락이어서 그런지 산세가 우람하고 가파른데도(경사 45~70도 정도) 여기저기에 고산족인 강족(姜族)들의 경작지가 보인다. 멀리 보이는 강족들의 농가는 한족들의 농가보다 더 크고 깨끗한 듯하나, 가까이 지나치면서 보니 집안의 지저분함은 비슷한 듯하다. 거의가 2층으로 이루어진 목재 주택인데 1층은 창고나 가축 축사로 사용하고 사람들은 2층에서 거주하는 것 같았다.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산줄기를 끼고 2차선 공로가 달린다. 어떤 곳은 절벽 바위를 깎아내고 길은 만든 곳도 있다. 산세가 어찌나 험한지 4차선으로의 확장이나 직선도로는 꿈도 못 꾼다. 손바닥만한 땅만 보이면 잘 다듬어 무슨 과일인지는 모르나 과일나무를 심어 놓았다. 가장 험한 고개를 오르니 이외로 조그마한 분지가 나온다. 어찌나 깔끔하게 과수원을 다듬어 놓았는지, 바닥에는 돌 한 덩이 보이지 않고 바람막이 흙 담장까지 둘러두었다.
도중에 들른 도시 쑹판(松板)시는 예상보다 작은 도시였는데 옛 성벽과 관문이 그대로 남나 있었다. 좌우에는 험난한 산맥이 뻗어있기 때문에 이곳을 막아버리면 나는 새도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
민강 줄기를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지 8시간 만에 민산산맥을 넘어 반대쪽 계곡으로 1시간 정도 내려가서야 주자이거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곡 입구에는 많은 호텔들이 있으나 겨울철 비수기라서 거의가 문을 닫아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직영하는 호텔과 5성급 호텔은 너무 비싸서 들어갈 수가 없었고, 3성급 호텔에 2인실 방 2개를 100원씩 주고 빌렸다. 호텔 식당은 주방을 제외하고는 불기운이라고는 전혀 없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도 종업원들은 태연하게 잘 지낸다. 종아리가 하도 시려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몇 잔 마셨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밥값과 술값이 상당히 비싸다. 여름철에는 공시 가격이 그대로 적용된다는데 프론트의 가격표에는 특실은 860원이고, 일반실은 680원으로 적혀 있다.

1월 15일 수요일 제24일차
‘황산에 가보지 않고는 중국의 산을 논하지 말고, 주자이거우에 가보지 않고는 중국의 물을 논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산수가 수려하고 물이 지극히 맑다고 한다. 이곳은 간쑤성과 쓰촨성의 경계가 되는 민산산맥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데, 계곡 안에 티베트인이 사는 부락이 9개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첫차를 타고 빨리 관람을 마쳐야 밤 12시 전에 청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8시에 입장권을 사서 트롤버스를 타고 기다리는데, 고산지대이고 산골짜기라서 그런지 정말 너무 추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손님이 타면 출발할 때까지 시동은 물론 히터까지 틀어놓는데, 운전기사나 안내양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떨다가 손님이 가득 차니까 그 때에야 출발한다. 아침 기온은 영하 15도이고 낮 기온은 영상 20도, 일교차가 30도를 웃돈다.
계곡을 오르기 시작하자 곧바로 호수가 나타나는데 수면의 색깔이 사진에서 본 그대로 초록색을 띄면서 물속은 유리판을 들여다보는 듯 투명하다. 오염된 것이 아니고 물속에 있는 석회석 성분이 물을 정화시켜 그렇다고 한다. 높은 곳은 해발 3,000m를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절벽을 흘러내리는 폭포가 얼어붙은 것이 장관을 이루는 곳도 있고, 멀리 보이는 만년설을 배경으로 한 호수의 잔잔한 수면은 정말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계곡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수 십 km를 나무판자를 이용하여 관람객이 다닐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놓았고, 트롤버스가 다니도록 도로를 닦은 곳은 산에서 파낸 흙을 모두 실어내어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있다.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았다. 도로 군데군데와 명승지에는 관리인들이 배정되어 청소도 하고, 관광객들의 오물 투기 및 자연훼손을 감시하고 있었다.
주자이거우 안의 상가가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으라는데, 한 곳밖에 없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1인분이 20원으로 매우 비싸고 맛도 별로다. 9시에 시작한 관람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청두에서 일반 시외버스로 오면, 버스요금이 1인당 70원이고 1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바로 청두로 출발했는데 운전기사는 티베트에서의 경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우리는 완전히 짐짝 취급을 당했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3시간 넘게 운전해도 끄떡도 않는다. 티베트에서는 산줄기 하나 넘는데 이틀이 걸리기도 한다며 휘파람 불어가며 씩씩하게 운전한다. 표고차도 심하고 워낙 거친 운전이라 형님은 멀미까지 하며 초죽음이 된 상태다.
밤 11시 경에 청두에 도착했다. 갈 때보다 한 시간 빨리 도착했다. 철도국에서 경영하는 철도빈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나니 피로도 풀리고 한결 개운했지만, 주자지거우에서 코감기에 걸린 코는 맹맹하다. 가장 따뜻한 곳에서 감기에 걸리다니…….
솔직히 말해서 주자이거우도 볼만 했지만 민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주변의 풍광도 만만치 않았다.

1월 16일 목요일 제25일차
안개가 뿌옇게 낀 길거리가 소란스럽다. 호각 소리, 경적 소리, 따르릉 소리가 잠을 깨운다. 중 ․ 고등학생들의 등교 시간은 벌써 지났고, 초등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다.
09:00에 T8차 특쾌열차로 베이징을 향해 출발했다. 철로 주변의 논과 밭에는 온갖 채소가 파랗게 자라고 있는데, 안개가 많고 햇볕이 적어 줄기나 잎이 부드러우며 독특한 맛이 있다고 한다. 쓰촨성 소개 책자에서도 ‘일채일격, 백채백미(一菜一格, 百菜百味)’라 하였으니, 채소의 종류와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다. 푸른 나무가 우거진 산, 푸른 물이 흐르는 계곡, 푸른 채소가 자라는 들판이 조화를 이룬 쓰촨성에 호감이 간다. 시간이 있으면 다시 와서 한 달 정도 머무르고 싶다.
열차가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서 딱딱이 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리기에 뭔가 싶어서 내다보니 여자 승무원들이다. 노래가 끝나자 지도를 들고 다니며 판다.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이 중국인의 상술인 것 같다.
민강과 가롱강을 갈라놓은 산맥을 넘어, 가롱강 줄기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지가 벌써 4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얼마나 남았는지……. 이미 열차는 쓰촨성을 벗어나 산시성에 들어섰다. 조금 더 가면 간쑤성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산시성으로 나오게 된다. 중국의 지세는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숨이 답답할 정도의 좁은 골짜기가 나와서 이제 능선을 넘게 되나보다 생각하면, 갑자기 앞이 환하게 트이며 분지가 나타나 마을이나 도시가 형성된다. 황토층의 지형에서는 산꼭대기까지 모두 개간한다. 그래서인지 창강(長江, 장강 또는 양자강)의 상류가 되는 이곳의 물은 온통 흙탕물이다. 마지막으로 산맥을 넘어갈 때는 터널이 더 많은지 그냥 철로가 더 많은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다. 산맥을 넘어가기 때문에 열차의 속도는 더 느려지고, 더군다나 골짜기를 굽이돌아 오르기 때문에 특쾌열차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황토층이 끝나자 다시 나무가 우거진 험한 산세가 펼쳐진다. 골짜기의 물이 유리알처럼 파랗고 깨끗하다. 지형에 따라 집의 형태도 바뀌어, 황토층에서는 흙집이 대부분이고 이곳에는 나무로 지은 집들뿐이다. 공통점은 조그마한 땅이라도 그냥 두지 않고 반드시 개간하여 농작물을 심는다는 것이다. 밭에는 보리와 밀로 보이는 파란 풀이 자라고, 가끔 보이는 채소는 말라비틀어져 먹을 수 있을까 싶다. 산간지대에 있는 작은 도시의 베란다에는 너나할 것 없이 돼지고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1월 17일 금요일 제26일차
정저우(鄭州, 정주)에서부터는 열차의 꼬리가 다시 머리가 되어 북쪽을 향해 화북평원을 마음껏 달린다. 이제야 특쾌열차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는가 보다. 시내로 접어드니 9시가 지났는데도 안개와 스모그 때문인지 가시거리가 200m정도이고, 심한 곳은 100m도 채 되지 않는다. 태양은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그냥 발갛게 보일 뿐이다. 중국의 대부분의 도시가 겨울철에는 이렇다(베이징은 예외)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일조량이 부족하여 농사에 큰 지장이 될 것 같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조금 덜하다고 한다. 연료를 대체하지 않으면 해결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지금 중국에서는 ‘서부 대개발(西部大開發)’정책의 일환으로 신장의 천연가스를 개발하여 전국에 공급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열차에 비치된 T8차 특쾌에 대한 간단한 안내>
T7/8차 열차. 별칭 ‘천부지성(天府之星)’호. 25K 신형 공조 쾌속열차. 열차에 종사하는 승무원은 6개 부서에 325명이며 평균 연령은 22세이고 95% 이상이 고졸 이상의 학력 보유. 1,2호는 기관차. 3~9호는 경좌차(지정석이 없는 좌석). 10호 식당차(경좌차에서 연와차로 이동하려는 승객을 차단하는 구실도 겸함). 11호 연와차(2층 침대, 1실 4인, 방문 있음). 12~18호 경와차(3층 침대, 1실 6인, 방문 없음). 19호 수하물차. T7차 ; 베이징 서 16:00→청두 19:18. T8차 : 청두 09:00→베이징 서 12:26. 운행 중 정차 역 12개.
베이징 서역에 도착하여 베이징역으로 이동한 다음 수하물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선양으로 가는 밤차를 타기 위해 열차표를 사려고 했으나, 15일 각급 학교가 일제히 방학을 했기 때문에 역 광장은 글자그대로 사람의 산이요,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절대로 허풍 아님). 열차표는 이미 매진되었기 때문에 한 장에 50원씩 더 주고 암표를 샀다. 열차표를 파는 사설 판매업소와 암표상의 공통점은 열차표 한 장마다 수수료를 반드시 챙긴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사설 판매업소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영업을 하고 암표상은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영업을 한다는 것뿐이다. 결론을 지으면 둘 다 인민들의 고혈을 우려내어 먹고 살아가는 업종이다.
베이징 우의상점에서 볼 일을 본 다음 쳰먼(前門)대가에 있는 베이징 카오야의 원조격인 전취덕 본점에서 오리구이를 먹었는데 맛은 있으나 양이 너무 적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톈탄궁위안(天壇公園)으로 걸어가면서 주위의 거리구경도 했다.
명나라 때부터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으로 원구단(圓丘壇), 황궁우(皇穹宇), 기년전(祈年殿)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원안의 중심도로는 폭이 넓은 직선도로이고, 정원에 심은 나무도 어느 방향으로 보나 모두 직선이다. 관광객이 매우 많았는데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나오다가 정문 옆에 있는 화장실의 벽에 별이 세 개 조각된 동판이 붙어 있기에 신기하게 생각하며 들어가 보니, 내가 지금까지 들어간 중국 화장실 중에서는 최고였다. 우리나라 5성급 호텔 화장실 수준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화장실 개선을 지도 ․ 장려하고 있다고 관리인이 설명한다.
고풍스런 건물로 꾸며진 류리창(琉璃창) 거리는, 소개 책자와는 달리 일반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이 대부분이며 진귀한 골동품은 볼 수 없었다. 왕푸징(王府井)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를 먹었는데 역시 양고기는 카슈가르(喀什)다. 너무 질기고 맛도 별로다.
여름에 왔을 때는 성벽 주변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가 되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는 우람한 정원수까지 심어 놓았다. 허물어졌던 성벽은 보수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다른 도시의 매연과 매캐한 냄새도 없으며, 6개월 동안에 베이징은 더 깨끗해진 것 같다.
역 대합실로 들어가는 출구 6곳에 보안 검색대를 설치하고 열차표를 검사하며 들어가게 하는데 역 광장에 길게 늘어선 줄이 끊어질 줄을 모른다. 대합실은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개찰을 하면 잠시 여유가 생기다가 조금 지나면 또 가득 찬다. 사람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냄새도 온갖 종류가 가득히 섞여 있다. 열차 시간표를 보니 하루에 베이징역을 출발하거나 통과하는 열차가 169개 열차나 된다. 암표로 구입한 열차표가 가짜가 많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혹시 가짜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무사히 승차할 수 있었다. 이 열차는 운행을 시작한지가 한 달도 안 된다면서 승객들에게 우유1통과 과자 1봉지를 나누어 주었다. 올림픽을 대비해서 모든 것을 바꾸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식인데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1월 18~20일 토~월요일 제27~29일차
아침 일찍 선양에 도착했다. 통역하는 조선족은 고향에 돌아와서 그런지 얼굴 표정이 무척 밝다. 우리가 없는 동안 눈은 모두 녹았으나 바람은 여전히 차다. 세수도 하지 않은 터라 호텔에 들어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장거리 여행이 끝난 해방감 때문인지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나간다.
서탑 거리의 앞면 있는 조선족 가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온갖 이야기꽃을 피웠다. 만주평원(동북평원)에서 나는 식량으로 중국사람 반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 좋은 땅을 잃었으니 광개토대왕께서는 지하에서 얼마나 통곡하실까? 중국에서는 상품을 살 때 반드시 영수증을 받아두었다가 상품에 하자가 생기면 배상을 받으러 온다고 한다. 그리고 한족들과 거래할 때는 말로서가 아니라 확실한 담보 근거를 설정해 두어야 된다고 한다. 개방 초기에 꿈은 안고 진출했던 기업들이 실패한 이유가 그것이라고 했다.
저녁을 먹으러 한식집에 들렀는데 음식이 깔끔하고 우리 입맛에 맞았다. 여행이 무사히 끝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마오타이주를 기울이며, 주인 아주머니의 넋두리를 안주 삼았다.  국내에서 식당, 횟집, 룸살롱까지 경영한 산전수전 다 겪은 49세의 중년이었다. 남편이 사업을 한답시고 중국에 들어와 몇 년 만에 밑천을 몽땅 날렸단다. 믿고 준 외상 수금이 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거류민증을 발급받아 일가족이 몽땅 이주를 해 왔다고 한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상값을 다 받겠단다. 식당을 하려고 가게를 얻어 수리하는데 보름이나 걸렸단다. 한족들의 ‘만만디’ 정신에 기가 질렸지만 이젠 마음을 고쳐먹어 자기가 더 느리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하루 빨리 돈을 벌어 귀국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제 저녁의 과음 탓인지 힘이 나질 않는다. 소주를 마신 것처럼 머리가 아프다거나 속이 쓰린 것은 없는데, 온 전신이 나른하며 힘이 쑥 빠져 버렸다. 중국 독주의 특성인 것 같다. 오전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간단하게 쇼핑도 하고 오후에는 귀국할 준비를 했다. 이틀 정도 쉬었더니 체력도 회복되고 마음도 가뿐하다.
선양 공항 출국장의 가게들은 면세점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가게보다 더 비싸다. 비행기에 오르니 승객의 거의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특히 방학이 되어 귀국하는 유학생이 많은 것 같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문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유리창 아래는 벌써 우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맑기가 한량없는데, 머지않은 시기에 중국이 산업화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어 황허와 창강에서 썩은 물을 마구 토해내면 저 푸른 바다가 어떻게 될지…….
인천 공항을 나오니 공기도 맑고 시계도 선명하다. 매연이 가득한 중국의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맑은 하늘 위에는 그리운 가족의 얼굴도 나타나고…….

덧붙이는 말
긴 한 달 동안의 여행이 끝났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몸무게도 1kg이나 줄었고(마라톤 풀코스 한 번 뛰면 1.5kg 줄어듦), 여독이 일주일 정도 풀리질 않았다. 65세의 나이로 함께 여행한 형님의 체력에 다시 한 번 부러움을 느낀다. 한 시간의 시차라고 하나 한 달의 기간은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일어나면 8시다.
진작 여행 기록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게으른 탓으로 이제야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는 이번 여행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정보를 제공한 많은 분들께 보답하는 뜻으로 이 글을 올린다.
비록 정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문장력이 떨어졌더라도 중국을 여행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